내 발모벽을 고치려고 앱을 만들었다 (아직 못 고쳤다)
저는 발모벽(트리코틸로마니아)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뽑는 강박 행동인데,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손이 머리로 올라가는 순간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뽑고 나서야 "아, 또 뽑았네"가 됩니다.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인지의 사각지대 문제에 가깝습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인지시켜주는 기계를 옆에 두면 되지 않을까. 그게 Don't Touch의 출발이었습니다.
만든 것
Electron 데스크톱 앱입니다. 웹캠으로 손과 얼굴을 실시간 추적하다가, 손이 설정한 영역(두피, 눈썹, 볼 등)에 닿는 순간 즉시 알림을 줍니다. 감지 영역은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고, 일일 통계와 연속 기록으로 흐름을 추적합니다.
기술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정한 것은 모든 영상 처리를 기기 안에서 끝낸다는 것이었습니다. MediaPipe Vision이 브라우저 수준의 런타임에서 충분히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루 종일 내 얼굴을 보고 있는 앱입니다. 이 영상이 단 한 프레임이라도 밖으로 나간다면, 제가 사용자라도 안 씁니다. 영상은 저장도 전송도 되지 않고, 감지 결과만 남습니다.
효과의 정직한 기록
여기부터는 홍보가 아니라 기록입니다.
노트북으로 일하던 시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알림이 울리면 손을 내렸고, 적어도 "내 손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하루에 수십 번 인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데스크탑으로 돌아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앱은 그대로인데 쓸 수 없는 환경이 됐고, 그렇게 한동안 방치됐습니다. 도구는 의지보다 환경을 탄다는 걸 만든 사람이 몸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레딧에 올려본 적이 있습니다. 잠깐 반응이 있다가 금세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인 이메일로 기능 요청이 한 통 왔습니다. 요청은 구체적이었습니다 — 알림음이 더 다양했으면 좋겠고(여러 언어로), 원하는 mp3나 wav 파일을 직접 추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러시아어를 쓰시는 분 같아서, 알림음을 AI TTS로 여러 언어 생성해 넣으면서 러시아어도 함께 추가했습니다. 바로 업데이트해서 답장을 보냈고, 그분의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운로드 수 같은 지표보다 그 메일 한 통이 훨씬 무거웠습니다.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고, 제가 만든 게 그 사람의 하루에 실제로 끼어 있다는 뜻이니까요.
한계도 그대로 적어두기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발모벽은 심리적 불안 기제에서 비롯됩니다. 이 앱이 잡아주는 건 행동의 표면이지, 그 밑의 불안이 아닙니다. 꾸준히 쓰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앱만으로 고치기는 어렵다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근거는 간단합니다. 만든 사람인 저도 아직 못 고쳤습니다. 증상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앱이 아니라 전문 상담과 치료가 먼저입니다.
그래도 이 앱은 계속 둘 생각입니다. 인지의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거울 하나는, 없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는 걸 노트북 시절의 제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